영혼의 순례길, 영문으로는 Paths of the Soul, 중국어로는 仁波( gāng rén bō)카일라스(수미산)의 이름이다. 카일라스는 티베트인들에게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성스러운 산으로 신들의 땅이다. 신이라기 보다는 부처가 아닐까 싶다. 그들에게 부처는 기독교에서 하느님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기독교와는 달리 자신이 깨달음을 얻게 되면 부처가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불교는 통일신라시대 이전부터 전해져 온 것이라 많이 익숙하다. 하지만 절에 모셔 있는 부처의 상은 우리와는 많이 다르게 생겼다. 부처님이 인도 사람이었기 때문인데 사실은 인도북부 네팔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왕자였다고 한다. 인도의 북부 밑으로 남쪽은 사실 불교보다는 인도 고유의 종교인 힌두교가 주를 이루지만 인도에서는 지역마다 엄청 다른 종교들이 있다. 그리고 인도에는 이슬람 교도가 상당히 많다. 불교를 믿는 인도인은 아주 적다. 불교도 많은 인도 종교 중에 하나일 뿐이니까.

중동에서 인도까지는 4시간 반 정도 비행거리이다. 인도의 위가 네팔이니 중동에서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인도북부에서 발생된 불교는 동남아와 동아시아까지 전파되었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된 이슬람교는 동남아시아와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지역까지 전파되었다. 물론 기독교는 근세기에 들어서 과학문명과 함께 세계적으로 확장된 종교가 되었지만 이전에는 불교를 믿는 국가가 전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였을 것이다.

중동에서 일하고 있는 작업자들은 필리핀,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부탄, 네팔, 이집트 등지에서 왔지만 가장 많은 근로자는 인도인이다. 발주처의 Manager부터 Operator, 현장 작업공까지 인도인들이 차지를 하고 있으며, 쿠웨이트 현지인은 Top management Group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네팔과 부탄인들의 생김은 우리와 많이 닮았다. 예전 7080년도의 촌스러운 한국사람 같다. 그들의 이름에도 부다가 있다. 그리고 부다가 태어난 곳을 구글 맵에서 찾아서 보여준다. 그 위치는 아래 지도처럼 네팔의 Lumbini Sanskritik이다.

 

 

 

[영혼의 순례길] 이 영화는 [중국운남리장 그리고 티벳]이라는 카페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유투브를 검색해서 시청하였다. 그 카페에는 전 카페운영자인 제이씨의 티벳라사까지도보여행 40일의 기록이 있는데, 영화 내내 그 게시판의 글을 떠 올라 서로 매칭이 되는 것 같다. 영화 출연진도 제이씨와 동행하신 분들과 얼추 비슷해 보인다. 카페의 카테고리 제목은 제이의 개고생 여행기라고 되어 있다. 제이씨는 순례 동안의 느낌과 생각들을 성경의 시편과 연관시켜 그 시편이 의미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터득하신 것 같다.

카페주소는 https://cafe.naver.com/ArticleList.nhn?search.clubid=13233307&search.menuid=178&search.boardtype=L  이다. 

 

 

아무튼,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된 것으로 출연자들은 비전문 배우이고 실제 티벳의 작은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냥 일상의 삶을, 순례길의 모습을 보여준다. 티벳 사람들은 실재로 죽기전에 성지 라싸와 성스러운 산 카일라스산으로 순례를 떠난 것이 평생 바람이라고 한다. 이슬람교도들이 그들의 성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가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고 하듯이 말이다.  

 

 

 

영화는 순례단이 거주하는 망캉에서 라싸, 그리고 성산 카일라스산까지 총 2,500km를 삼보일배를 하면서 순례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순례자 11명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순례길에 나서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같았다. 자신의 동생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자기 형은 죽기전에 순례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고 자신은 죽기 전에 꼭 순례를 떠나고 싶어하는 노인부터, 야크를 너무 많이 죽여 죄책감에 시달려 술로 위안을 삼고 있는 백정, 자신의 집을 짓다가 숨진 두명의 인부를 기리기 위해서 합류한 중년 남성, 부모의 요청으로 같이 나선 젊은 청년들 그리고 엄마를 따라 나선 어린 소녀, 출산을 앞둔 임산부도 그 험난한 여정을 같이한다. 총 열한명이 출발하여 한 명의 새 생명이 탄생하고 한 명의 생명이 잠든다.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올 때도 같은 수의 순례자가 되었다.

 

순례 중에 낳은 아이... 배고프다고 울면 삼보일배를 멈추고 젖을 물린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

영화 초반에 네셔널지오그래픽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염소가 새끼 낳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는데, 영화 중반에 임산부의 출산도 상당히 리얼하게 담아서 보여준다. 그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다.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후반부에 순례단의 최고령 할아버지의 죽음과 그것을 대하는 티벳인 그리고 조장문화에 대해서 알아보자. 죽은 이에 대해서 조카의 설명이 이어진다. “나의 어머니는 서른에 돌아 가셨지. 세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삼촌은 결코 결혼을 하시지 않으셨지. 독경하는 것을 좋아하셨지. 마을 어느 누구 와도 다툼이 없으셨지. 삼촌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나는 라싸 그리고 성산 캉린포치로 모셔왔어. 여기 성스러운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업보의 보답이지. 난 삼촌은 축복받았다고 생각해. 그의 죽음은 성스러운 산과 연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야.”

 

 

그리고 장례는 조장으로 치러진다. 조는 새 鳥이다. 주검을 스님들이 와서 새가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분해한다. 그러면 독수리가 내려와 먹는다. 티벳인들이 야크를 먹듯이 죽은 이의 주검은 독수리에게 나눠준다. 이 조장 문화는 지역의 환경과도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예상을 해본다. 저온의 건조한 고지대에서는 부패가 더디게 진행된다. 자연스럽게 미라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듯하다. 모든 생명은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섭리인데 그렇게 되기 힘드니 그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곳은 먹을 것이 풍요롭지 않다. 불교의 윤회사상이 토착문화에 깊이 스며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순례의 이유와 티벳인들

순례길은 총 2500km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하얀 눈으로 덮인 설산이 유채꽃으로 뒤덮인 마을로 바뀌어 진다. 계절이 몇 번 지나간다. 그들은 조급하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서두른다고 빨리 득하는 것도 아니고 빨리 득한다고 해도 좋은 것은 없다. 그들은 목표한 것을 얻을 때까지 순간순간의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그 과정을 더욱 더 힘든 순간으로 채웠다면 득하였을 때 최고의 환희를 맞볼 수 있다.

 

 

 

순례 중에 교통사고로 트랙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지만 수레를 직접 끌고 순례를 계속한다. 뒤에서 들이 받은 이는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화를 낼 이유도 없다. 세옹지마다. 이 사고로 트랙터를 잃었지만, 이 사고를 그냥 지나치면 더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티벳인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욕심이 없었다. 돈이 필요하면 노동을 해서 필요한 만큼 벌었고, 나눠 먹었다. 돈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와 비교하면 넉넉하지 못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다시 보면 달라진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단순하였다.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필요한 것이 적은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너무 많이 가진다는 것은 또 다른 무엇과 얽히게 되어 더 피곤해진다.

 

 

 

그들은 왜 그렇게 힘든 순례를 선택하였을까?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을까?

순례를 하다가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나고 삼보일배에 대한 정확한 지침을 듣게 된다. 그 노인은 삼보일배의 핵심은 경건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순례는 타인을 위한 것이다.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소망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 우연히 마주친 순례 중인 부부와 함께 차를 마시는데, 그 부인은 당나귀 대신 수레를 끌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당나귀는 부인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여서 평탄한 길에 부인이 끌고 가파른 경사지에서만 당나귀가 수레를 끌게 한다고 한다. 당나귀는 우리와 동고동락을 같이 하고 있으며 라싸에 도착하면 당나귀의 털을 Jokhang 사원의 부처상 앞에 놓고 당나귀를 위해서 기도해 준다는 예기를 듣는다. 그리고 헤어질 때에는 당나귀를 위해서 Tsampa(아침 식사로 귀리로 만든 죽)까지 그 부부에게 준다.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 삼배일배 중에 지나가는 개미를 발견하고 행진을 멈춘다. 영화에는 미물이라도 생명은 중시하는 불교의 사상이 담겨있다.  

 

 

 

어느 따듯한 날에 즐거운 한 때이다.

 

계절은 바뀌어 유채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밭을 지나간다.

 

 

 

 

 

여러 생각들이 교차한다.

 

알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뭐라고 정의하지 못하겠고,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만져지지 않는다.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답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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